제임스 프랭코,톰 펠튼,브라이언 콕스 / 루퍼트 와이아트
혹성탈출 시리즈가 여러 편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본 것은 가장 최근에 개봉한 '진화의 시작' 밖에 없다.
사실이 어떤 지는 모르겠으나, 듣기로는 진화한 원숭이들이 인간에게 반격을 가해 인류를 지배하려 시도한다고 했었다. (이런 케이스가 있긴 있는 건지;;;)
그런데 어제 밤에 혹성탈출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영화가 주되게 주인공인 시저의 입장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동물의 눈을 통해 보는 인간의 폭력은 잔혹하고 가차없었다.
약물 실험에 실패한 원숭이들을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안락사 시키고, 우리를 뛰쳐나와 다리를 건너는 원숭이 떼에게는 총구부터 들이대고 시작한다. 인간은 동물들이 인간의 입장에서 틀지운 행동범위를 약간만 벗어나도 그토록 익숙한 동물들 앞에서 경악하고, 당혹스러울 만큼 난폭해진다. 한편으로 이런 인간들의 반응은 그만큼 자신의 두려움과 공포를, 그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약함은 인간 만의 것이 아니다. 문제점은 인간에게는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잠깐만이라도 벗어나는 여백이 없다는 것이다. 연구실을, 우리를 뛰쳐나온 힘 센 원숭이들은 분명 두려운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한 번 저들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왜 목숨을 걸고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 지 생각해 보지 않는다. 오직 원숭이를 길렀고, 시저를 '너는 애완동물이 아니야'라고 말할 줄 아는 윌만이 그들의 마음에 가닿으려 시도한다. 어쩌면 타자에 대한 공포는 자신의 견고한 자리를 벗어나 타자의 위치에 다가가보려 하는 노력의 부재, 그 게으름의 문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시저와 함께 원숭이들이 떼죽음을 당하며 이루려 한 것이 숲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는 사실. 그게 전부였다는 것. 인간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는 자기망상은 정말이지 인간들의 사고 속에서만 가능한 혐오스런 생각이었다.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인간사회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힘겨운 일이다. 여러 번의 실험으로 훼손된 몸을 가진 원숭이는 아우슈비치의 실험대상과 다르지 않았다. 구제역으로 개죽음을 당한 가축들도 떠올랐다.
인간이 해야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동물을 위한 어떤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동물에게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그들과 우리의 거리를 유지할 것인가이다.
시저의 집은 처음부터 윌의 집이 아니라 숲이었다.
(동물원 정말 싫다.-_ㅠ...)
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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